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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블뉴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회장이 걸어온 삶

사랑협회 │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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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은 모든 면에서 여느 아이들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당시는 ‘자폐’라는 말도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때였다. 빠르게 성장하는 대한민국에서 느리게 발달하는 아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이하 사랑협회) 김용직 대표의 이야기다.

사랑협회는 자폐성 장애인과 가족의 권익을 대표하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사회통합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됐다. 그로부터 13년, 사랑협회가 달려온 길은 그대로 대한민국 발달장애인 권익 신장의 역사가 됐다.

뭉쳐야 산다. 부모회의 시작

시작은 미미했다. 아들의 장애를 인지하기 시작할 무렵 김 대표는 판사로 임관했다. 낙담하고 주저앉기보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부모들이 힘을 합쳐 조기교실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부모회(자폐아 부모회)가 생기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혼자서는 갈 길이 멀지만,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폐아 부모회’의 구성원이 주축이 된 ‘계명복지회’의 창립 멤버가 됐다.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는 다르던 시절이다. 88올림픽이 열리기도 전이다. 나라의 지원은 기대할 수도 없다. 부모들이 3000~4000만원씩을 내서 법인을 만들었다. 발달장애 역사상 최초의 법인이다.

그렇게 최초의 부모들로 구성된 발달장애 관련 법인을 만들어 놓고도 익명으로 활동했다. 현직 판사가 부모단체 일을 한다는 것을 마음 놓고 드러낼 수 없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육영학교와 밀알학교 등이 소송에 휘말렸을 땐 현직 판사의 신분으로 또 다른 법정에 서서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권리에 대해 설명했다. 성분도복지관, 밀알학교 운영위원 고문변호사 등 발달장애인 권리를 위한 크고 작은 자문역도 맡아서 했다.

직업적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알게 된 이점도 한껏 활용했다. 말아톤 복지센터(가칭)가 설립되려할 때 유력 인사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해서 개관식에 오도록 노력했다.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입을 통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전 국민적으로 확장되게 하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모았다. 그 중심에 김 대표가 있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르면서 김 대표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판사로 시작했으니 대법관에 도전하고자 하는 개인적 소망이 있었지만 그것이 아들의 인생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아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2001년 8월 판사복을 벗었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설립

판사복을 벗고 법무법인으로 옮겨가면서 자폐증과 발달장애에 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의 제도를 마스터했다. 다른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부모회도 공부했다. 그 단체들이 각 나라의 발달장애인 권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형 모델을 갖춘 부모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전문가 그룹, 후원자 그룹으로 나누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부모들만으론 발달장애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큰일을 도모하기가 힘에 부쳤다. 의료계와 특수교육계, 사회복지계, 언론계 등 여러 인사들을 설득하며 전문가 그룹에 합류시켰다.

하지만 단체가 운영되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아도 발달장애인 자식을 키우느라 힘에 겨운 부모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후원이 절실했다. 각 기업과 단체의 총수 및 사회공헌부장 등을 만나고 다녔다. 발달장애에 대해 설명하고, 후원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렇게 해서 2006년 1월 12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밀알학교에서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랑협회의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김 대표는 초대 회장으로 임명됐다.

대표직을 맡으면서 사랑협회의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할 방안을 고민했다. 캠프를 열기로 했다. 취임 몇 달 만인 2006년 8월, SK그룹에서 1억원을 후원받아 제1회 전국 자폐인 사랑 캠프를 개최했다. 발달장애인, 부모, 비장애형제자매, 자원봉사자, 의료진, 강사, 스텝 등 천 명이 모인 2박 3일의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사랑협회의 존재가 전국에 인식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법조인의 정체성으로

김 대표의 정체성은 법조인이다. 법에 관한 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다.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발달장애인 관련 법과 제도를 만들고 검토하는 것이다.

2011년 말부터 일기 시작한 발달장애인법 개정 움직임에 사랑협회의 대표로서, 또 법조인 개인으로서 참여해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당시를 회상하면 앞에서 조명받았던 수많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노력했던 일화가 더 기억에 남는다.

“법무장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한 구절 때문에 법 개정이 폐기처분 될 위기에 놓였을 때 달려가 조문을 바꾸고 마지막 설득 작업을 통해 극적으로 협의를 이룬 일, 국회의원을 찾아가 수정안의 대표 발의를 부탁하고 국회의원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해서 협조를 요청한 일, 각 부처 사람들을 만나 예산을 요구하고 법적인 근거를 내놓은 일, 발달장애인 관련 법과 제도를 위해 연구하고 결과를 내놓은 일 등 그의 역사는 드러나지 않는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발달장애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사랑협회가 출범한 지 13년이 흘렀다. 사랑협회는 중앙지부인 서울을 제외하고도 강원, 제주, 부산 등 9개 지역에 지부가 설립된 전국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부속기관으로는 센터 봄, 별별체육센터, 신탁의사결정지원센터, 직업재능개발센터, 발달장애연구소 등이 있다.

사랑협회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삶을 초기, 중기, 사후로 나누어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돕고, 교육적으로 지원하는 데 힘쓰고 있다.

김 대표는 발달장애 초기 단계의 가족지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스스로 아무것도 없던 척박한 대한민국 땅에서 막막함의 바다를 건너왔다. 후배 부모들은, 앞으로 태어나는 발달장애인들은 자신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지난해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지원으로 개최된 양육자기술훈련(CST) 국제기술조정회의에 지석연, 김이경 등 두 명의 마스터 트레이너를 참석시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발달장애 중기엔 근로가 답이다. 이를 위해 사랑협회에서는 직업재능개발센터를 운영하며 발달장애인의 다양한 재능을 개발하고 교육 및 훈련을 통해 직업적 현장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마지막 단계는 부모 사후다. “자식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더이상 빌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도록, 법적인 지원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삶을 탄탄히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신탁의사결정지원센터는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으로, 발달장애인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당사자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신탁재산관리시스템을 마련했다.

김 대표가 가장 열정을 가지고 추진한 사업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단지 사업을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갔다. 발달장애인 신탁제도를 국가가 공적인 차원에서 다룰 수 있도록 국민연금관리공단과 MOU를 맺었다.

오랜 시간 앞만 보고 달려왔다.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성과도 있었다. 그동안 아들은 성인이 되었고 그룹홈에서 자립해 살며 근로를 하는 성인이 되었다. 아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덕에 모든 발달장애인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더 낮은 데로 임할 수 있게 해주소서”. 그가 만들어낸 역사만큼 앞으로의 그가 만들어갈 역사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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